
인천상륙작전 6.25 전쟁을 다룬 역사 영화 줄거리 결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온 북한군과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한 국군과 UN군의 공방전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던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은 성공확률이 지극히 낮은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X-RAY 작전에 장학수 대위를 비롯한 8인의 해군 첩보부대를 투입한다. 장학수와 그의 부하들은 인천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북한군 정치장교 박남철 육군 중좌와 부하들을 죽이고, 박남철 중좌와 그가 이끄는 검열단으로 위장 잠입한다.
첩보부대는 인천에서 순조롭게 정보를 수집해 나가는 듯하였으나 가장 중요한 정보인 인천 앞바다의 기뢰부설현황만큼은 인천방어사령관인 림계진 육군 총좌가 최고사령관에게 직접 보고한다는 이유로 내주지 않았고, 다른 장소들도 뒤져보았으나 번번이 입수에 실패하였다. 박남철 중좌의 보직이 정치장교라서 군사기밀에 이것저것 개입이 가능했다. 그리고 일반 하전사들과 군관들도 군기확립 및 당성강조라는 명목 하에 이것저것 시킬 수가 있었다. 인천방어사령관 림계진 총좌는 자신과 같은 소련 유학파 출신인 박남철 중좌를 각별하게 생각하면서도 그의 정체가 진자 박남철 중좌가 맞는지 의심하였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잡지 못해 지켜보기만 한다. 작전날짜는 다가오고 시간에 쫓긴 장학수 대위는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림계진 총좌가 자리르 비운 틈에 해도를 훔쳐 달아나는 작전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장학수 대위 조가 림계진 총좌 등과 술자리를 함께 하는 사이 남기성 조가 림계진 총좌의 방에 숨어들어 해도를 훔치기로 하였지만 림계진 총좌의 작전참모인 류장춘 총위가 업무를 이유로 먼저 자리를 떠버리고 만다. 대원 한 명이 기뢰부 설해도를 찾는 사이, 사령부 복도에서 군기교육을 핑계로 경계병들을 얼차려 시켜 시간을 끌고 있던 남기성은 류장춘 총위가 돌아오자 그에게 술을 같이 마시자며 접근하여 방에 따라 들어가고, 류장춘 총위를 총으로 위협하여 무장해제, 해도가 담긴 금고를 열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남기성이 잠깐 해도에 눈을 돌린 사이 류장춘 총위가 빠져나와 서랍의 권총을 꺼내 반격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류장춘 총위가 라이터를 던져 해도를 태워버리고 불붙은 해도를 갖고 창문으로 탈출하려던 대원마저 류장춘 총위의 권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한편, 장학수 대위 일행의 정체가 가짜라는 류장춘 총위의 전화를 받은 림계진 총좌는 마침내 장학수 대위의 정체를 밝혀낸다. 소련 유학파 중 림계진 총좌가 얼굴은 모르지만,ㅇ ㅏ버지가 부르주아 반동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끝내 죽이지 못하자 한 친구가 아버지를 죽였고, 이에 격분해 다른 친구들을 모두 죽이고 남한으로 도망쳐버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장학수 대위였던 것이다. 장학수 대위와 림계진 총좌, 그리고 두 사람의 부하들이 서로 총을 겨눈 위기의 순간 장학수 대위의 부하들이 난입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장학수 대위는 사령부에 빠져나온 남기성이 몰고 온 지프차를 타고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3명의 요원을 잃는다.
림계진 총좌에게 쫓기는 장학수 대위는 켈로부대원이자 림계진 총좌를 비롯한 북한군 군관들이 자주 들르는 이발소의 이발사인 최석중의 도움을 받아 안전가옥에 숨을 수 있었지만 하필 그 안전가옥은 최석중의 조카이자 시립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인 한 채선의 집 지하실에 마련되어 있었다. 최석중은 장학수를 숨겨주고 집으로 돌아와 켈로부대와 교신을 시도하지만 집에는 이미 최석주의 정체를 알아차린 림계진 총좌가 기다리고 있었다. 림계진 총좌는 한 채선의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지하실을 발견하지 못하자 인민재판을 벌여 최석중을 총살해 버리고 돌아간다. 한 채선은 자신을 풀어주면 삼촌을 살릴 수 있으니 풀어달라고 간청했고, 장학수 대위는 고민 끝에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옆집으로 연결된 비밀 아지트의 문을 열어 한 채선을 내보내 주었지만 간발의 차로 최석중은 총살되고 만다. 한 채선은 림계진의 부하에 의해 반동으로 몰려서 갖은 폭행을 당하지만, 림계진 총좌는 그걸 발리고 오히려 당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고 한다.
장학수 대위는 최석중의 무전을 받고 아지트로 찾아온 서진철 대장이 이끄는 인천지역 켈로부대와 접선, 마지막 작전으로 기뢰부설 현황을 알고 있는 류장춘 총위를 직접 납치하여 정보를 얻기로 한다. 작전 직전 장학수 대위는 먼발치에서 어머니를 본 뒤 발걸음을 돌리고, 대원들과 함께 남기서의 아내가 있는 곳에 들러 남기성에게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준 뒤 병원으로 떠난다. 한 채선의 도움을 받아 의사로 위장하여 병원에 잠입한다. 한 채선이 할 말이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림계진 총좌를 속여 병실에서 기다리게 한 다음, X-RAY를 찍으러 가야 한다고 류장춘 총위가 누운 침대를 끌고 방을 나선 순간 장학수와 대원들은 류장춘을 침대채로 납치하고 병원 경비병력들과 총격전을 벌이며 병원을 빠져나간다.
격렬한 추격전과 총격전 끝에 켈로부대원들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명의 대원들을 또 잃고, 포로가 된 두 대원들은 대원들이 건물에 숨어 지켜보는 앞에서 인민재판에서 처형되고 만다. 납치된 류장춘 총위는 처음에는 호기롭게 죽일 테 면 죽여보라고 큰소리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모든 걸 불겠다면서 월미도라고 외치지만 때는 늦어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처량하게 퇴장한다. 류장춘을 통해 기뢰부설 현황을 파악한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출항을 결의하고 장학수와 켈로부대원들에게 팔미도 등대의 장악을 명하여 팔미도 등대로 출발하던 중 장학수 대위는 류장춘 총위가 외치고 날아간 월미도가 신경 쓰여 서진철이 이끄는 켈로부대에게 팔미도로 가게 하고 자신은 남은 2명의 요원들을 이끌고 월미도로 가기로 한다.
월미도에는 직접 온 림계진 총좌의 지휘하에 해안포부대가 포격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다 숨겨둔 203mm B-4 4대로 대응공격을 시작하였고 상륙지점에는 TNT를 묻어놓은 후 기폭시킴으로써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림계진의 명령하에 해안포병들은 맥아더 장군의 기함을 향해 조준한 후 발사를 하려 했으나 장학수 대위가 오는 과정에서 노획한 SU-122 자주포에 의해 단 한 발의 포탄으로 전멸한다. 여기에 TNT는 남기성이 이동 도중 내려서 북한군들의 시선을 끈 후 직접 기폭 시켜 북한군과 함께 동귀어진한다. 해안포 폭발에서 살아남은 림계진 총좌는 부상당한 몸으로 간신히 빠져나온 후 T-34-85 전차에 직접 탑승해 장학수 대위의 자주포를 격파하려 하지만, 오히려 장학수 대위가 쏜 포탄에 전차는 작동불능이 된다. 그러나 장학수 대위의 부하 대원 또한 차량을 운전하다가 해안포가 유폭 될 때 날아온 파편이 몸에 박혀 중상을 입고, 장학수 대위는 대원을 뒤로한 채 작전의 성공을 알리기 위해 조명탄을 쏘아 올리지만, 그 순간 죽지 않았던 림계진 총좌의 총알에 맞고 만다.
결국 림계진 총좌와 마지막 결투가 벌어지고 장학수 대위는 림계진 총좌를 사살하나 자신도 이미 중상을 입었고, 차마 뒤로 하고 떠나올 자신이 없어 말없이 뵙기만 하고 온 어머니를 하늘에서 지켜드리겠다고 다짐하며 눈을 감는다. 한편 한 채선이 포함된 켈로부대원들은 서진철의 지휘 아래 북한 육군의 경비병력을 전멸시키고 팔미도 등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상륙지점이 확보되었음을 신호탄으로 확인한 연합군이 대거 상륙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으로 끝난다.
육지로 올라온 맥아더 장군과 부하인 미 육군 장교들은 전사한 장학수 대위의 시신을 보고 경례하고, 한 채선은 전사한 장학수 대위를 보고 오열한다. 전투 후 장학수 대위의 모친과 남기성의 아내는 아들과 남편을 만나기 위해 국군환영행사를 나가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다. 영화는 첩보부대원들이 작전에 처음 지원했을 때의 순간을 차례로 보여주며 결말 끝을 맺는다. 어떤 이는 일가족이 공산당에게 몰살당해 복수심 때문에 지원했으며, 또 어떤 이는 가문 대대로 독립군 집안이었고 조국을 지키는 일이기에 참여한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또 어떤 이는 나쁜 일하면서 배운 기술을 국가를 위해 쓰고 싶어서, 또 어떤 이는 자식이 많아서 쌀을 준다기에 지원했다고 한다. 이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실제 X-RAY 작전에 투입되어 용맹히 싸우다 전사한 부대원들의 사진을 끝으로 영화는 결말이 난다.
인천상륙작전 역사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의 지휘 아래 조선인민군이 점령하고 있던 인천에서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펼친 상륙작전.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미드웨이 해전과 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미군은 이 전쟁에 참전한 초기에 조선인민군에게 연패하며 경상도까지 밀려 내려오다가 결국 한반도의 허리 부분을 장악한 이 작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전황이 뒤바뀌게 된다.
북한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이 잘 언급되지 않으며, 상륙작전으로 일어난 전투의 일부인 "우너미도 방어전투"라는 표현만 자주 사용한다. 월미도 전투에 대한 기념행사도 한다.
코드네임은 크로마이트 작전 (Operation Chromite)으로, 보안 유지에 특히 신경 쓰고자 작전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어들 중 크롬 광석에서 따와 지었다. 작전 후에는 Battle of Inchon(인천 전투)으로 불리고 있다. 인천시의 현용 영자 표기인 Incheon이 아니라 당시 정식 표기인 Inchon에 기반한 Inchon을 사용했다.
6.25 전쟁이 개전된 이래 조선인민군은 대한민국 국군을 낙동강 전선까지 밀어내는 데 성공하나, 이곳에서 전선이 고착된다. 인민군은 낙동강까지 계속 승리하며 겉보기에는 유리한 상황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길어진 보급로와 계속되는 전투, 그리고 연합군이 미친 듯이 쏟아부은 폭격으로 인해 정예부대의 전투력이 크게 고갈된 상태였다. 특히 북한이 소련에게 공여받은 250여 대의 T-34 전차의 경우, 서울에서 탱크 쇼크에 맛을 들인 북한군 수뇌부에 의해 제대로 된 제병 합동 전술을 만들지 않고 무의미하게 기갑전력을 소모시켰고, 결국 낙동강 전선에서 별다른 전술 없이 대부분의 기갑 전력을 일회용으로 소모해 버린다. 당장 1950년 9월 당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에 투입한 병력은 점령한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강제 징집한 자칭 의용군 5만여 명을 포함해서도 10만 명이 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한국군은 UN군의 참전 덕분에 동수 이상의 병력을 확보하고 워커중장의 우주방어(방어전략)로 간신히 낙동강 전선을 유지하게 되었다.
산을 저지선으로 선택할 경우 북한군이 샛길 등으로 산을 쉽게 넘어가서 아군을 역포위하는 문제가 있게 되어 한국군과 UN군은 낙동강을 주요 저지선으로 삼았는데, 수비를 할 때는 적이 보이므로 유리하지만, 역공을 하려면 도강부터 해야 하고 적에게 개활지에서 엄폐물 없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문제점 때문에 박격도 쉽지 않았고, ㅂ구한군 역시 격심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공세의 기세를 늦추려 하지 않아 낙동강 전선의 한국군 및 UN군은 마땅한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UN군이 반격을 시작할 경우, 38선까지 도달하는데만 1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며, 그 기간도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6월 29일 한강방어선 시찰에 나섰다. 한강변에서 전선을 확인 후 지상군 투입을 결정한다.
인천이 상륙하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륙지로 결정된 것은 일단 인천 이외에 맥아더 장군이 원하는 적 후방의 완전 단절이라는 조건을 만족할 만한 장소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아무리 무리해서 인천으로 계획을 잡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상륙작전을 준비하는 듯한 공격이 다른 곳에도 실시되었다.
해당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중공군을 교란할 양동작전이 필요했다. 양동작전이 시행된 곳으로 남한 지역에는 삼척시, 군산시, 북한 지역에는 함경남도 신포시 마량도, 남포시 등이 있었다.
인천 상륙작전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월미도 제압, 인천항 상륙, 인천 남동부 상륙이다.
인천상륙작전은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의 열세에 있었던 6.25 전쟁의 전황을 단숨에 뒤집었다. 더는 후퇴할 수 없던 궁지에 물린 대한민국이 이작전으로 역전의 카운터를 때려 전황을 북한군 우세에서 국군에게로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반격의 신호탄을 울렸다. 이후 북한군은 종전 때까지 예전 같은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 영화 고증 및 군사적 오류
+주인공 장학수 대위는 해군 장교이므로 영문계급명은 "Lieutenant(Senior Grade)"인데 , 작중에선 계속 "Captain"이라고 육군/해병대/공군식 계급명으로 잘못 불린다. 해군 특수부대가 주인공임에도 하나도 해군스러운 부분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은 가운데에서 난 고증 오류다.
+맥아더 장군의 기함인 AGC7는 영화 속에서 선미에 헬리콥터 데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는 1953년에야 오버홀 하면서 설치된다. 따라서 1950년 작전 당시에는 핼리패드가 없는 것이 맞다.
+김일성이 입는 흰색 예복과 견장도 당시로서는 고증오류이다. 김일성은 인천상륙작전이 일어날 즈음에는 군에 대한 영향력은 있었지만, 군 계급이 없어서 흰색 예복이 아니라 인민복을 입고 지휘를 하였다. 김일성이 흰색 예복을 포함한 군복류를 입은 것은 원수 계급이 수여된 후인 1953년 2월부터이다. 또, 영화에서는 견정도 1948년부터 1952년까지만 사용된 견장이 민족보위상 견장인 별을 월계관이 둘러싼 모습의 견장을 차고 있는데, 이건 당시 민족보위상이었던 최용건 전용 견장이었다. 1953년 이후 제정된 김일성의 원수 견장은 별 안에 북한 국장이 그려진 모습이다.
+영화 중간에 조선인민공화국 만세라는 글씨가 나오는데, 북한의 정식 국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이 영화뿐만이 아니라 흔히 벌어지는 오류로 조선 인민 공화국이라는 개념이 따로 있는 만큼 북한을 조선 인민 공화국으로 줄여서 쓰는 것은 다소 잘못된 표현이다.
+영화에서는 작전에 투입된 대원이 전원 사망했지만 실제로는 두 명만 작전 중 전사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잘 살아 있다. 영화의 신파적 전개를 위한 변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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