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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대장 김창수 영화 치하포사건 백범 김구 선생을 다룬 영화이야기

by 서아쌤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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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김창수 영화 줄거리 스포 결말 있음

1896년 황태도 치하포, 청년 김창수가 일본인을 죽이고 체포된다. 그는 재판장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았을 뿐이라고 소리치지만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 감옥소에 수감된다. 일본의 편에 선 감옥 소장 강형식은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김창수를 갖은 고문으로 괴롭히고 죄수들마저 김창수에게 등을 돌린다. 하지만 그곳은 그에게만 지옥이 아니었다. 못 배우고, 못 가졌다는 이유로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조선인들을 보며 김창수는 조금씩 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변화를 꿈꾸기 시작한다. 천하고 평범한 청년이 대장 김창수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모든 것을 바꿔 놓은 625일의 야기다.

명성왕후를 시해한 듯 보이는 일본인을 죽이고 난 뒤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이 일본인을 죽였다고 벽보를 붙여놓는다. 그리고 5개월 뒤 김창수(조진웅)는 인천 감옥으로 이송된다.
"내가 이자를 죽였소. 김창수 황해도 해추 백운박 텃골"

자신은 지금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들과는 다름을 주장하던 김창수는 엄청 두들겨 맞고 감방으로 들어간다. 인청 감옥소는 친일파 강혁식(송승헌)이 소장으로 있는 곳이다. 간부들 역시 일본을 위해 죄수(한국인)의 노동을 착취한다. 김창수가 두들겨 맞고 감옥으로 들어갈 때 마상구(정만식)도 고문을 당한 채 감옥으로 향했고 둘은 스치듯 첫 만남을 갖게 된다.
곧 죽을 사람을 감옥을 보냈다며 투덜대던 조덕팔(신정근)은 그런 김창수를 고진사(정진영)는 도와준다. 재판을 받게 해주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고 단식투쟁을 벌이자, 곧 재판을 받게 된다.
"국모의 원수를 갚았습니다. 내가 죽인 일본인은 변복을 하고 칼을 차고 있었습니다. 국모를 살해했냐고 묻자 칼을 휘두르며 맨손인 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만약 그자가 자객이 아니라면 나를 공격할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진짜 죄인을 눈앞에 두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주제에 무슨 염치로 상복을 입고 있단 말이요! 죽은 자는 있는데 죽인 자가 없는 것이 이 나라입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자객이 아니라면 맨손인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얘기하지만, 일본은 김창수가 죽인 사람이 평범한 상인들뿐이라고 한다. 결국 김창수는 사형을 판결받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게 된다.

처음엔 마상구와 싸우기도 하지만 , 나중엔 마상구의 사정을 듣고 재판을 받게 도와주기도 한다. 대부분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은 재판도 받지 못하고 갇혀있다는 말을 고진사로부터 듣게 된다. 마산구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들어온 것도 알게 된다.
"그날도 밀린 빚 받으러 갔었지 갔더니 그 지주 놈의 새끼가 소작농 딸을 덮치고 있는 거야. 내 개같이 살았어도 그런 것을 못 봐. 그래 그것 말리러 들어갔지. 그런데 그 쌍놈의 영감탱이가 그 에미나이를 죽여버린 거야. 겨우 14살 된 데미나이를. 근데 말이지 그 아비라는 놈이 밀린 빚 까준다고 하니까 내가 죽였다고 난리를 친 거야(마상구)"

마상구의 일을 도와준 것을 계기로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사형수인 자신이 죽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마상구가 재판을 받기 진정서를 간수 이영달(유승목)에게 전달하지만 책 사이에 넣어두고 전하진 않는다. 얼마 가지 않아 간수 박동구(전배수)가 일 년 전쯤 어머니 치료비로 급전이 필요해서 왜놈 전당포에다 땅을 맡겼는데 그 주인 놈이 다른 사람에게 팔아먹고 일본으로 도망가서, 그 땅(조상 땅)을 뺏기게 됐다는 말을 하게 된다. 김창수가 해결해 줄 것 같은 생각에 이영달과 박동구는 김창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결국 땅을 찾게 된다. 그래서 김창수가 요구했던 양원종(정규수)의 환갑잔치도 열어주고, 감옥에서 한글을 가르칠 수 있게 된다.

김창수의 도움으로 재판을 받게 되고, 석방되는 사람들이 생기자 김창수를 찾는 사람들은 줄을 서게 된다. 하지만 감옥에서 한글을 가르친다는 김창수의 얘기가 담벼락을 넘어 기사로 쓰이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안 강형식은 분노한다. 그래서 김창수는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이를 말리던 마상구도 엄청 맞는다.

한성과 인천을 잊는 철로 공사에 투입된 죄수들, 영광이라고 생각하라는 강혁식. 강형식이 돈을 벌고, 대접을 받는 동안 김창수는 고문을 받으며 버텨내고 있었다. 술 취한 강형식이 김창수를 찾아와 취한 듯 주절거린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하는 거야(강형식)"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해야 해서 하는 거다(김창수)"

철로 공사로 인해 사람들은 계속 다치고 죽는 일이 발생한다. 도망치는 사람들도 생기지만 사살당하는 사람도 많다. 이영달이 총으로 쏴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죽인다. 큰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크게 다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간수 이영달 역시 사고를 당한다. 이영달을 보고 지나칠 수 없던 마상구가 그를 구해주지만, 마상구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마상구의 죽음이 계기가 된 듯, 김창수는 죄수들과 손에 손잡고 철로 공사에 못 나간다며 간수들에게 대항하게 된다. 그 사이 마상구에 의해 목숨을 구한 이영달은 마상구가 전해달라고 했던 서신이 생각나서 확인한다. 철로 공사가 지연이 되자 강형식은 김창수를 만나게 되고,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과 제대로 된 먹을 것과 2교대를 3교대로 바꿔 달라며 이를 문서화해 서명해 달라고 한다. 그럼 원하는 날 철로가 깔린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화가 난 강형식은 총을 들어 김창수를 협박한다. 결국 김창수의 제안을 수락하고 그렇게 철로 공사 현장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다.
사형수였던 고진사가 먼저 사형을 당하고, 곧이어 김창수 역시 사형집행을 하게 된다. 사형을 진행하려던 찰나, 황명이라며 김창수의 사형집행을 중단하라며 이재정(이경영)이 등장한다. 이는 감옥에서 글을 배운 죄수들이 고종에게 상소문을 올리게 되고, 이를 외면할 수 없었던 고종이 사형집행을 막아준다. 해줄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 미안하다고 고종이 얘기한다.
이번 일로 김창수는 감옥에서 나갈 것을 결심하고 나가서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을 막겠다고 한다. 감옥에 함께 잇던 죄수들과 함께 탈옥을 시도, 잡힐 위기에 처하지만 간수 최윤석(곽동연)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옥에 성공하게 된다. 철문으로 막힌 작은 문에 같은 방의 죄수들을 먼저 보내고 이상한 낌새는 눈치챈 김창수는 철문 입구에 앉아있는데 그 모습을 최윤석이 보게 된다. 둘을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가 최윤석이 김창수를 외면함으로써 탈옥에 성공한다.

1898년 3월 19일 사형수 김창수는 인천 감옥에서 탈옥했다. 그로부터 12년 뒤 대한 제국은 ㅇ리본에 강제 병합되었다. 세상으로 돌아간 김창수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고, 수많은 젊은 이들이 그를 따라 구국의 한 길로 뛰어들었다.


대장 김창수 모티브 백범 김구선생 치하포 사건

치하포사건은 1896년 3월 9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한 주막에서 조선 청년 김구가 일본인 상인 츠치다 조스케를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끝내 살해한 뒤 재물을 탈취한 사건이다. 사건 직후 김구는 피신했지만 6월 말 해주부에서 체포, 인천 감리서에 구속된 상태로 심문을 받다 1898년 탈옥 후 재수감, 1899년 석방되었다.

1896년 1월부터 을미사변과 단발령의 강제시행 등으로 분격한 유생들이 친일내각의 타도와 일본세력을 축출하고자 을미의병을 조직하여 수도권 및 충청권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1896년 1월 중순부터는 강원도 및 함경도 북부가지도 의병이 확대되었다. 이에 전국적으로 친일파와 일본인에 대한 상해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1896년 5월 30일 일본 공사가 외부대신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총 일본인 피살인원 43명, 부상자 및 피학대자가 14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국적인 소요에 대해 일본정부에서도 심히 오려스럽다는 것을 알고 일본인행상자 여행금지 및 재조선 거류민 청수를 실시하였다. 일본의 경우 30년 전에 비슷한 문제를 겪어봤기 때문에 철수령부터 내렸다.
일본 경찰의 보고에 따르면 츠치다 조스케는 이즈하라 항의 부역상 오쿠보키의 고용인으로서 1895년 10월에 평안남도 진남포에 도착하여 11월 4일에 장사를 하러 황해도 황주로 갔었다고 한다. 그 또한 각지에의 일본인에 대한 소요사태에 따른 철수명령을 받고 인천으로 가던 도중 치하포구 주인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김구에게 살해당한다.

츠치다 조스케가 상인이라는 건 이미 2000년대가 되기 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김구를 다룬 대표학자로 유명한 도진순이 그 예. 도진순은 1997년 보고서를 작성하여 치하포 사건 분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여기서도 이미 츠치다 조스케가 상인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후 도진순의 논문도 동일하다. 츠치다 조스케가 ㅇ리본제국 중위가 아니라는 건 애초에 신선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었다.
학계의 정설은 김구 혐오자들이 주장하는 '강도살인'이나 '국방에 위한 우발적 살인'도 아니고 김구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일본인 군인 살인'이나 '일본인 상인을 군인으로 오인살해'도 아니다. 그러므로 노재승 문서에 나온 것들은 어느 것도 학계 정설이 아니다. 학계정설은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만행에 대해 김구가 일본인 상인을 살해하는 것으로 보복했다는 것이다. 민간인 테러라는 관점으로 비판하면 합당하지만 '국밥 때문에 강도살인'이란 주장은 왜곡이다.


대장 김창수 영화의 논란과 비판

치하포 사건이 영화 메인 줄거리라는 점에서 역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큰 우려가 나오는 상태이다. 치하포 사건은 김구가 일본인 민간인을 살해한 살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걸 미화한 시점에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참고로 9월 초에 공개되었던 줄거리는 '1896년 명성황후 시해범을 죽이고 사형 선고를 받은 청년 김창수가 인청 감옥소의 조선딩ㄴ들 사이에서 대장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감동실화'였다. 이후 수정된 위의 줄거리에서도 피해자인 츠치다를 짐승으로 비유하고 있는 상태이다. 츠치다가 김구의 손에 억울하게 죽은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대장 김창수를 제작한 제작진 측에서도 치하포 사건을 다룬 것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때문에 영화에서는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담으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영화 상의 표현은 백범일지에 드러난 기술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 듯한 느낌을 주고 츠치다가 민간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현재에 와서는,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았다'는 제작진의 입장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애매해졌다.
치하포 사건을 차치하고서라도 역사왜곡의 수위가 "나랏말싸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백범 김구라는 민족적 영웅으로 각성하기 전에 청년 김창수의 정신적 갈등이나 인간적 고뇌는 없이 이미 불세출의 리더십으로 극초반부터 죄수들을 사로잡는 슈퍼히어로적 모습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과하다. "나랏말싸미"가 '신미'라는 인물로 '세종대왕을'을 폄하했다면, "대장 김창수"는 지나치게 가벼운 시각과 간편한 사건으로 '김구'란 인물을 평면화시켰다. 문제는 대다수의 관객이 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들을 실화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위인의 인생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여기에 사실상 중반부부터 신파로 스토리를 이어가서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강요받는 느낌이 짙다. 스토리의 주조연을 통틀어 입체적인 인물이 전무할 정도로 역할이 명확하며 이에 따라 갈등구조 역시 근해 슈퍼히어로물보다도 단순하다. 이 장황한 신파 구조는 결국 식민지 조정이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무리수로 결론 맺는다.
이러한 역사왜곡 논란, 낮은 평가에도 그나마 백범 김구의 실화라는 관객들의 인식 오류로 평점을 과대평가받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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